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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궤도 위기 (1981~1984) === 1981년 1월 24일 사비에트의 원자로 탑재 레이더 해양감시위성 「볼나(Волна) 14호」가 원자로를 폐기 궤도로 올려 보내는 데 실패하고 대기권에 재돌입했다. 잔해는 루이나 북부 헤이스팅스 시 관할 삼림지대에 약 600km에 걸쳐 흩어졌고, 루이나는 4개월에 걸친 수색 작전 「GLEANER」로 방사성 파편 47점을 회수했다. 루이나는 회수 비용 1,380만 달러를 사비에트에 청구했고, 사비에트는 1983년 그 가운데 410만 달러를 지급했다. 이 [[볼나 14호 추락 사건]]은 사비에트의 궤도 활동이 루이나 영토에 물리적 피해를 입힌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1984년 [[마테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사비에트는 교전 당사국이 아니었지만, 루이나군 전체가 전시 태세에 들어가 있었고 양국의 경계 수위도 높아져 있었다. 이 와중인 1984년 5월 11일, 사비에트가 정지궤도에 올린 「궤도 연구 위성 1127호」가 루이나의 조기경보위성 WATCHFIRE 4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9일째 되는 날 두 위성 사이의 거리는 40km까지 좁혀졌다. 해협의 7분이라는 조건에서 조기경보위성은 전략 억지력의 가장 약한 고리였다. 루이나 국방부는 1127호가 정지궤도 요격 무기의 시험이거나, 최악의 경우 선제공격에 앞서 루이나의 눈을 멀게 하려는 사전 작업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방부는 경계태세를 2단계로 올렸고, 해군은 항구에 있던 전략잠수함 9척을 긴급 출항시켰다. 사비에트는 루이나 전략잠수함의 대규모 출항을 선제공격 준비로 해석해 궤도방위군과 전략로켓부대의 경계 수위를 올렸다. 양측은 1965년 개설된 벨포르-크라슬리스크 직통선으로 모두 17차례 교신했고, 사비에트는 1127호가 추진기 고장으로 표류 중인 통신위성 시험기라고 설명했다. 12일째인 5월 23일 1127호는 추진기를 가동해 WATCHFIRE 4호로부터 멀어졌고, 양국은 차례로 경계태세를 해제했다. 1127호의 정체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다. 2004년 기밀 해제된 루이나 문서는 1127호가 정지궤도 근접 기동 능력을 시험하던 사찰 위성이었다고 결론지었고, 2011년 출간된 전직 사비에트 궤도방위군 장교의 회고록은 1127호가 30km 이내로는 접근하지 않도록 사전에 계획된 '능력 과시'였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든 이 [[정지궤도 위기]]는 제1차 경쟁 기간 동안 양국이 궤도 문제로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으로 평가된다. 위기를 겪은 양국 군부는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7분의 세계에서 조기경보위성에 접근하는 행위는 공격 준비와 구별할 수 없으며, 구별할 수 없는 행위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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